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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돌아보며2026.10.10 · 닷킴

도면에서는 됐는데, 침대가 돌지 않았다

내시경실을 하나 더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침대를 움직여보니, 도면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있었죠.

흰 접수대와 파란 진료실 문이 있는 건강검진센터 접수 공간
K 여성병원 건강검진센터 리뉴얼사진 김현수

소아과 얘기를 하면 색 고르던 재미와 작은 수전이 먼저 생각나요. 같은 시기에 했던 건강검진센터는 좀 달라요. 이 작업은 얘기를 꺼내기가 아직 조금 쓰립니다.

내시경실을 하나에서 둘로 늘리고 싶었어요. 현장에 묻고, 도면을 보고, 늦게까지 고민도 많이 했죠. 그런데 다 만들어놓고 보니 침대가 생각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 거예요. 결국 계획한 두 실을 다 쓰지 못하고 하나만 사용하게 됐던 게 가장 아쉽게 남아 있어요.

시간도 마음도 많이 쓴 작업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어디에서 놓쳤을까. 다시 하면 뭘 다르게 할까. 완성 사진을 보면서 그때 얘기도 같이 해보려 해요.

K 여성병원 건강검진센터 리뉴얼 · 2023. 2. · 165㎡ · 시공 고운앤컴퍼니(주) · 사진 김현수

내시경실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2023년 2월에 마무리한 K 여성병원 건강검진센터, 면적은 165㎡예요. 넉넉한 공간은 아니었는데 담고 싶은 건 많았어요. 그중 하나가 내시경실을 하나 더 만드는 일이었고요.

방 하나가 더 생기면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죠. 물론 방만 나누면 끝나는 건 아니에요. 침대가 드나들고, 장비가 들어가고, 의료진이 자리를 잡아야 하니까요. 그걸 도면에서 하나씩 맞춰가는 동안에는 될 것 같았어요.

사진에는 흰 접수대와 파란 문, 커다란 숫자가 보여요. 익숙한 장면인데, 저는 이제 이 사진을 보면 안쪽 진료 공간까지 같이 떠올리게 돼요. 그 안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을 우리가 조금 더 오래 봤더라면 어땠을까 하고요.

공간 옆의 토막상식 · 바닥과 천장 · 좁은 방이라면, 천장에도 자리가 있을지 몰라요

내시경실 장비를 꼭 바닥에만 놓을 필요는 없더라고요. 세계내시경기구의 2013년 설계 가이드에는 천장에 매단 관절형 지지대에 의료 장비를 달아놓는 배치가 나와요. 바닥에 장비 카트를 둘지, 벽이나 천장을 쓸지에 따라 침대 옆 풍경도 달라지겠죠. 가이드가 짚는 건 꽤 소박해요. 의료진이 신경 쓸 전선과 옮겨야 할 장비가 줄면 환자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도면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한번 들어볼 만하네요.

Mulder 외, 2013 · WEO 내시경 유닛 설계 가이드 ↗

침대는 들어가는데, 돌릴 자리가 없었어요

현장에 의견도 물었고 침대와 장비 자리도 확인했어요. 그런데 막상 써보니 침대를 돌리기가 어렵고, 의료진이 앉아 일할 자리도 여유가 없었죠. 들어가는지까지는 봤는데, 들어간 다음에 어떻게 쓰는지를 충분히 못 본 거예요.

침대를 돌리려면 모서리가 지나갈 자리도 있어야 하고, 의자에 앉은 사람은 무릎도 움직여야 하잖아요. 장비를 더 놓으면 남는 자리는 또 줄어들고요. 하나씩 보면 당연한데, 그걸 한 방 안에서 동시에 생각하는 게 부족했어요.

“이 정도면 되나요?” 하고 묻는 대신, 침대를 어느 쪽으로 밀고 들어오는지부터 같이 봤어야 했나 봐요. 의자는 어디에 놓는지, 누가 옆에 서는지, 그 상태로 몸을 돌릴 수 있는지. 지금 돌아보면 묻고 싶은 게 이렇게 많은데 말이죠.

침대의 회전 공간과 도면을 함께 살피는 닷킴 세 사람
침대를 놓고 나면, 그다음은 사람 차례.AI 생성 · 닷킴 캐릭터 일러스트

우리끼리 해봤을 때는 됐거든요

처음부터 텅 빈 공간에 새로 만드는 일이었다면 좀 달랐을까요. 여기는 쓰고 있던 병원을 고치는 작업이라, 마음껏 비워놓고 움직여볼 수는 없었어요. 공사 중 어느 때 확인해야 할지도 함께 고민했어야 했죠.

그렇다고 아예 안 해본 건 아니에요. 밤에 실무자들이 퇴근한 뒤 우리끼리 움직여보기도 했거든요. 그때는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의료진이 평소에 일하는 방식은 우리가 해본 것과 달랐고, 나중에 장비가 추가되면서 공간은 더 좁아졌죠.

이 대목이 자꾸 마음에 남아요. 한번 해봤으니 확인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서요. 우리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과, 거기서 매일 일하는 사람이 편하게 움직인다는 건 꽤 다른 얘기였는데.

다시 한다면 실제로 쓰는 분들과 해보고 싶어요. 늘 쓰는 장비도 놓고, 평소 순서대로 한번 움직여보고요. 여러 사람이 겹치거나 장비를 옮겨야 할 때처럼 좀 번거로운 상황도 같이요.

공간 옆의 토막상식 · 골판지 수술실 · 골판지로 만든 수술실, 꽤 쓸모 있었대요

바이람자데 연구진의 2018년 연구에서는 파란 테이프로 바닥에 벽과 문 위치를 표시하고, 다음 단계에서는 골판지로 실물 크기 공간을 만들었어요. 벽과 문, 수납 위치를 옮겨가며 비교하는 거죠. 의사·간호사·마취 인력 등 10명이 참여해 팀별로 여섯 가지 설계 변형을 살폈고, 침대 이동 같은 특정 동작과 토론을 합친 한 회차는 20분 이내였어요. 벽을 다 만들기 전에 마음껏 옮겨본다니. 생각보다 가볍게 시작할 수도 있었구나 싶어요.

Bayramzadeh 외, 2018 · Applied Ergonomics ↗

바닥 테이프와 침대, 장비를 놓고 동선을 함께 검토하는 세 사람
다시 한다면, 매일 여기서 일할 사람들과 함께.AI 생성 · 닷킴 캐릭터 일러스트

해본 사람에게 더 물어볼걸

병원 공간을 여러 번 만들어본 사람에게 더 물어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 경험이 어디에서 차이를 만드는지, 당시에는 충분히 몰랐던 것 같아요.

처음 하는 일은 모르는 게 뭔지도 잘 모르잖아요. 무언가 빠졌다는 느낌이 있어야 질문이라도 할 텐데, 그냥 지나쳐버리는 거죠. 비슷한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도면을 보자마자 짚었을 부분이 있었을지도 모르고요.

의료진은 매일 쓰는 방식을 알고, 병원을 많이 만들어본 사람은 자주 막히는 곳을 알겠죠.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공간으로 풀어내면 되는 거고요. 그분들을 조금 더 일찍, 더 자주 찾아갔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열심히는 했어요. 그래서 더 아쉬운 거겠죠. 다음에는 혼자 더 오래 고민하기 전에, 같이 봐줄 사람부터 찾아보고 싶어요.

다시 한다면, 벽이 생기기 전에

다시 이 일을 맡는다면 도면을 마치는 날짜 옆에, 실제로 움직여보는 날짜도 적어둘 것 같아요. 누가 와야 하고, 어떤 장비가 있어야 하고, 안 되면 언제 고칠 수 있는지까지요.

바쁘다 보면 그런 시간부터 뒤로 밀리기 쉬우니까요. 가능하면 벽이 생기기 전에, 적어도 아직 바꿀 수 있을 때. 그 시간을 먼저 잡아두고 싶어요.

의뢰한 쪽도, 만들고 현장을 챙긴 쪽도 힘을 많이 쓴 작업이에요. 그래서 사진 몇 장으로 정리하고 넘어가기가 마음에 걸렸어요. 잘 안된 얘기를 다시 꺼내는 건 여전히 좀 쓰리지만, 다음에 같은 질문을 놓치지 않으려면 남겨두는 편이 낫겠죠.

다음 도면을 볼 때는 방이 하나 더 나온다고 곧장 기뻐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침대부터 한번 돌려보고요.

한 줄 정리

우리끼리는 됐는데, 매일 거기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되는지는 더 봤어야 했어요.

다음 편 예고

다음에는 우리가 오래 머물렀던 사무실 얘기를 해볼게요. 앞선 작업에서 아쉬웠던 걸 어떻게 가져갔는지, 예산 얘기는 왜 또 어려웠는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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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둘러싼 질문은 계속됩니다.
다음 대화와 작업에서 또 만나요.

이야기와 이어지는 작업

2023K 여성병원 건강검진센터 리뉴얼↗
다음 대화와 작업에서 이어집니다.전체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