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했던 작업 중에 뭐가 제일 기억에 남느냐는 얘기를 하다가, 소아과가 먼저 떠올랐어요. 이건 만드는 동안에도 참 재밌었고, 다 만들고 나서도 좋았거든요. 사진을 다시 보면 그때 이것저것 골라보던 기분이 조금 돌아와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소아과는 아무래도 남의 공간 같지가 않아요. 내 아이를 데리고 온다면 어떨까. 아픈 아이도 힘들지만 데려온 부모도 지쳐 있을 텐데, 병원까지 차갑게 느껴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자주 했죠.
2023년 2월에 마무리한 K 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리뉴얼. 지금도 좋아하는 작업이에요. 마음에 드는 색과 곡선도 많고, 얘기를 시작하면 꼭 다시 꺼내게 되는 작은 수전도 하나 있거든요.
K 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리뉴얼 · 2023. 2. · 시공 고운앤컴퍼니(주) · 사진 김현수
내 아이를 데려온다면
보통 상업 공간을 만들 때는 이곳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를 많이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서는 자꾸 아이 쪽으로 마음이 갔어요. 저 문 앞에 서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부모 옆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어떨까 하는 쪽으로요.
아이와 함께 갈 만한 공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느껴왔는데, 그런 공간을 직접 만들어볼 기회가 생긴 거잖아요. 괜히 조금 더 잘하고 싶었어요. 이쯤 되면 일에 사적인 마음이 꽤 들어간 셈이죠.
막상 고르기 시작하니 궁금한 게 더 많아졌어요. 어른인 내 눈에 예쁜 것 말고, 아이가 먼저 눈길을 주는 건 뭘까. 내 아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질문이 조금 달라지더라고요.
공간 옆의 토막상식 · 아이의 눈높이 · 다섯 살의 바다와 열한 살의 바다는 다르대요
병원 벽에 바다를 그린다면 뭘 그릴까요? 코아드 연구진의 2008년 조사에서 3–5세는 배나 모래놀이 양동이처럼 단순한 그림을 좋아했어요. 6–10세는 물고기와 조개, 사람이 있는 해변을, 11세 이상은 파도와 패턴 같은 추상적인 표현을 떠올렸고요. 같은 바다를 좋아한다고 해도 머릿속 그림은 이렇게 다른 거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라는 말도 꽤 넓구나 싶어요.

파랑 옆에 분홍, 그 사이에 초록
병원에 오는 날은 대개 기분 좋은 날이 아니잖아요. 아이는 아프고 부모는 걱정되고. 그래서 공간에는 색이 좀 있었으면 했어요. 창백한 느낌보다는, 들어왔을 때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는 쪽으로요.
파란 벽 옆에 분홍색 문을 놓고, 그 사이에는 초록색 아치도 넣었어요. 하나씩 고를 때도 재밌지만 옆에 붙였을 때가 더 중요하더라고요. 좋아하는 색을 다 넣는다고 마음에 드는 공간이 되는 건 또 아니니까.
아이들 공간이라고 온통 아기자기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여기에는 부모도 앉아 있고, 의료진은 하루 종일 일하잖아요. 아이에게는 반갑고 어른에게도 부담 없는 정도. 그 사이를 찾는 게 이 작업의 재미 중 하나였죠.
아치와 둥근 벽도 좋아해요. 방이 여럿 이어지다 보면 문과 모서리가 많아지는데, 그 사이에 곡선이 들어가니 표정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어요. 물론 만들고 싶은 걸 전부 할 수는 없어서, 예산 안에서 어디에 힘을 줄지는 계속 고민했고요.
공간 옆의 토막상식 · 병원의 색 · 병원 하면 흰색인데, 아이들 취향은 좀 달랐어요
박진규·박창배가 한국 소아 환자 50명에게 병실 색채 시뮬레이션을 보여준 2011년 연구에서 가장 인기 있던 색은 파랑, 가장 낮게 평가된 색은 흰색이었어요. 박진규의 2009년 연구에서도 파랑과 초록이 아이들의 선호를 받았고요. 병원을 그려보라면 어른은 흰색부터 떠올릴 것 같은데, 정작 그 방에 있을 아이들은 다른 색을 좋아했다니. 우리가 고른 파랑과 초록이 조금 더 반갑게 느껴져요.


아직도 생각나는 악어 수전
그런데 막상 같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제일 신나게 꺼낸 건 화장실 얘기였어요. 작은 변기와 소변기, 그리고 악어 입처럼 여닫는 수전. 처음에는 그게 변기였나, 수전이었나 서로 기억을 더듬기도 했고요.
사진을 보면 초록색 동물 모양 수전이 남아 있어요. 저런 걸 고르는 게 그렇게 재밌었어요. 손 씻으러 온 아이가 한번 쳐다보고 만져보고 싶어 할 만한 것. 큰 벽이나 천장만큼이나 이런 작은 물건에도 마음이 갔죠.
내 아이가 여기 서 있다면 어디에 손을 뻗을까. 수전 하나 고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지금도 이 작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진료실 하나인데, 모르는 게 참 많더라고요
재밌었다고 일이 쉬웠던 건 아니에요. 진료실은 하나였는데, 그 하나를 이해하는 데도 모르는 게 많더라고요. 의사는 어디에 앉고 아이와 보호자는 어느 쪽에 있어야 할까. 책상을 놓고 나면 그 옆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른 소아과를 봐도 배치가 다 달랐어요. 의료진에게 더 묻고 싶은데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고, 예산도 생각해야 했고요. 도면에서는 정리가 된 것 같은데, 실제 진료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다시 궁금해지는 식이었어요.
다시 한다면 처음부터 그 장면들을 더 많이 물어보고 싶어요. 아이가 들어와서 앉고, 보호자가 옆에 자리를 잡고, 의사가 몸을 돌리는 순서까지. 예쁜 방을 만드는 재미에, 그 방에서 일하는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도 더해보고 싶고요.

좋아하는 작업이라서, 아쉬운 것도 오래 남아요
아이에게 친절한 공간을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있었어요. 그래서 자동문 주변의 손 끼임 문제를 돌아볼 때는 마음이 더 무거웠고요. 잘 만들고 싶었던 마음과 별개로, 실제로 쓸 때 놓치는 게 생길 수 있다는 걸 배웠죠.
그 뒤로는 다른 공간을 보면서도 예전처럼 쉽게 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왜 이렇게 했지 싶다가도, 그때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 한번 더 생각하게 돼요. 직접 만들어보니 보이는 어려움들이 있잖아요.
다시 맡는다면 아이가 손을 대는 곳, 문이 움직이는 순간, 부모가 잠깐 다른 곳을 보는 상황을 더 살펴볼 것 같아요. 완성 사진에서는 지나치기 쉬운 장면들이죠.
그래도 이 소아과는 좋아요. 색을 고르던 재미도, 작은 수전을 발견한 기분도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좋았던 건 다음에도 가져가고, 아쉬웠던 건 다음번에 조금 더 잘 챙겨보고 싶어요.

한 줄 정리
내 아이가 올 곳이라고 생각하니, 작은 수전 하나도 그냥 고를 수가 없더라고요.
다음 편 예고
같은 시기에 작업한 건강검진센터 얘기도 남겨보려고 해요. 소아과와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돌아보게 되는 곳이에요. 도면에서는 괜찮았는데, 막상 침대를 움직이려니 생각처럼 되지 않았던 이야기부터요.
공간을 둘러싼 질문은 계속됩니다.
다음 대화와 작업에서 또 만나요.
